[요약] 최근 너도나도 개발 중이라는 스마트 와치 폼팩터는 새로운 영역의 스마트 단말기보다는 보조적 정보 단말기로서 더 가치가 있음.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맞추려면, 비용을 절감한 최적화된 단말기가 되어야 함. 검색 경험의 발전 지향점의 끝에 있는 ‘시리’나 ‘구글 나우’ 같은 서비스와 공명하는 단말기로서 가능성이 있을 것. ✍
최근에 구글이 글래스로 안경 폼팩터를 내세우며 웨어러블 컴퓨팅의 불을 지피더니, 이제는 스마트 와치 폼팩터의 주가가 급상승 중입니다. 애플이 개발 중이라는 소문에 이어, 삼성은 오래전부터 이미 개발을 해오고 있다고 하고, LG도 개발한다고 하고, 이제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소문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스마트 와치 폼팩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형태는 비슷하더라도 그 내용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분류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 통신기(전화기)
- 컴퓨팅 단말기
- 정보 단말기
컴퓨팅과 양방향 통신은 전통적으로 기대하는 시계 폼팩터의 기능입니다. 세이코나 카시오 같은 일본 시계 회사들은 이미 80년대에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갖춘 손목시계들을 만들었습니다. 삼성은 1998년에 시계형 이동전화 단말기를 만들어 ‘시판’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전화기를 시계형으로 만든다는 것은, 크기를 확 줄여 손목에 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별로 큰 이득이 없습니다. 눈곱만 한 단추를 애써 눌러봤자 제한된 성능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고, ‘전격 제트작전’에서 키트를 호출하듯 잔뜩 멋을 부리는 것 말고는 전화기로의 역할은 불편할 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시계 폼팩터를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2003년에 발표된 SPOT(Smart Personal Object Technology)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파슬(Fossil), 순토(Suunto) 같은 시계 회사들과 시계형 정보 단말기를 내놓았었죠. 그런데 그것은 양방향 통신기도, 컴퓨터도 아니었습니다. 날씨, 뉴스, 주가, 스포츠 결과 등을 알려주는 정보 단말기였습니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도대체 양방향 통신도 되고 컴퓨터도 되는 SPOT 2.0은 언제 나올까를 더 기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2.0은 나오지 않았고, 2008년에 공식적으로 SPOT은 폐기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기대하는 2.0은 SPOT의 DNA와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SPOT은 기본적으로 FM 방송 신호를 이용하는 MSN Direct라는 단방향 망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방향 통신도 되고, 인터넷도 되는 2.0을 고려하자면, 왜 하필 이런 망을 선택했을까요? 애초 전화기도 컴퓨터도 아닌 정보 단말기로서 포지셔닝을 했기 때문입니다. SPOT이 등장하던 시절의 분위기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용어가 대유행을 하던 시절로, 다양한 스크린에 정보를 전달하려는 실험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SPOT은 시계에 국한된 솔루션이 아니고,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이었습니다. 비슷한 솔루션으로 엠비언트 디바이시즈(Ambient Device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MIT 미디어랩에서 분사한 회사인데, SPOT과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디바이스를 직접 개발했었습니다. 이 회사는 페이저(일명 ‘삐삐’) 망을 이용하여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여담으로, 요즘 웬 삐삐냐 하시겠지만, 아직도 페이저 망은 건재합니다. 이 회사의 망도 여전히 운용 중이라고 합니다.)
SPOT이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 네트워크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SPOT 서비스를 위해서는 MSN Direct 망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월 $9.95 또는 연 $59였습니다. 사실 그보다 저렴한 무선망을 찾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날씨 정보나 받기 위해 그 비용을 낸다는 것이 그리 싼 것은 아니죠.
비용은 그렇다 치고, 그럼 정보 단말기의 컨셉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더 멋진, 양방향 통신기나 컴퓨터가 되어야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요? 저는 시계 폼팩터의 가치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에 있다고 믿습니다. SPOT의 방향성은 맞았다는 것이죠. 전화기나 컴퓨터를 시계로 얼마나 멋지게 만들어야 쓸만한 것이 나올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정말 정말 미래적인 모습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시계 폼팩터로서 가치 있는 정도가 딱 정보 단말기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정보 단말기라는 것이 언뜻 전화기나 컴퓨터보다 별 중요성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가장 난도가 높은 숙제 중 하나입니다. 검색 경험의 미래와 직결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검색 경험의 발전 지향점은 ‘필요한 정보에의 즉각적인 접근’입니다. 그 지향점의 끝을 달리고 있는 서비스가 바로 애플 시리와 구글 나우죠. 즉각적으로 응답하거나(시리), 적시에 자동으로 알려주는(구글 나우) 기술을 통해, 검색 경험을 극대화하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오래전부터 위젯 형 서비스에 대한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형태가 어떻든, 핵심은 똑같습니다. ‘필요한 정보에의 즉각적 접근’.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정형화된 포맷으로, 즉각적 접근은 항시[즉시] 켜져 있는[켜지는] 인터페이스로 만들려는 시도를 해왔고, 그것이 과거에는 때로는 핫키로 호출되는 위젯 GUI로, 또는 냉장고의 조그만 디스플레이로 구현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걸림돌은 네트워크입니다.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무선망을 소비자가 수용할 만한 비용으로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SPOT 솔루션이 증명을 해 보인 듯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에는 항상 반전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 지금엔 전혀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곤 하죠. 이동전화망 속도의 비약적인 발전과 스마트폰 혁명이 그 반전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그 반전을 인식시켜준 회사가 바로 페블(Pebble)입니다. 광역망 통신과 컴퓨팅은 스마트폰이 하고, 정보 디스플레이는 시계가 한다는 것이죠. 스마트 와치가 그렇게 무거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디스플레이로 E-잉크를 채용한 것도 최상의 선택입니다. 항시 켜져 있어도 전원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디스플레이니까요. 페블의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시계 폼팩터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불씨를 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경 폼팩터를 주목하게 만든 구글 글래스 현상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됩니다. 구글 브랜드 힘으로 일단 시계 폼팩터보다는 안경 폼팩터가 더 많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구글 글래스는 VR도 AR도 아니고, 그저 핸즈프리 카메라 아니면 구글 나우 서비스 단말기로써 사용하긴 너무 비싼 단말기입니다. 그럴 바엔 시계 폼팩터가 더 낫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안경보다는 시계가 장착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나,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안경 폼팩터든, 시계 폼팩터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항간에는 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컴퓨팅 성능 등을 운운하며, 멋진 만화적 컨셉 디자인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 멋진 시계, 돈 백 주고 또 사시겠습니까? 이미 스마트폰도 있고, 태블릿도 있습니다. 구글 글래스의 $1,500은커녕, 페블의 $150도 큰 벽으로 느껴집니다. 시리나 구글 나우 같은 정보 서비스로 특화하고, 특히 비용적인 측면에서 최적화할 수 있는 단말기만이 의미 있는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뉴스가 들려 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스마트 와치 개발에 엑스박스와 키넥스를 개발했던 팀이 관여하고 있다나. 스마트 와치의 또 다른 용도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위 분류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 컨트롤러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나마 잘나가는 엑스박스를 위해, 6축 센서를 달든, 음성 명령을 하든, 터치로 문지르든, 그런 용도로의 사용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죠. 아니면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제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좌우지간 그것은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는 있어도 시계 폼팩터의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핵심은, 즉각적 정보 접근을 위한 보조적 단말기로서, 수용 가능한 수준의 최적화된 단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게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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