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번 CES에서 선보였던 스마트TV ‘ES8000’ 시리즈가 이번 주말부터 한국에 시판된다고 합니다. 삼성은 이를 홍보하기 위해, 8일 오전에 기자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데이’ 행사를, 오후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블로거 데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블로거 데이 행사에 다녀온 소감을 적어봅니다.
칼바람을 뚫고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를 찾았습니다. 지난 CES에서 그나마 뭔가 작심하고 내놓은 몇 안 되는 물건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제품인 삼성 스마트TV의 실제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삼성 스마트TV는 그동안 업계에 회자하던-또는 실험적으로 적용되던- 음성, 동작인식 등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상용 적용한 모델로,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향후 TV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준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TV, 이제는 인터페이스 경쟁이다 [LG경제연구소]
음성이나 동작 인식은 이미 애플의 시리(Siri)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Kinect)를 통해 상당히 대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인터페이스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애플 브랜드의 TV 디바이스-애플이 공식적으론 한 번도 이런 제품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를 한 적이 없음에도-는 음성이나 동작 인식의 인터페이스를 가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제품이 개발되고 있는 것을 봤다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말한 힌트 때문에 더 그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TV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게 될 겁니다. 내가 마침내 그걸 해결했어요.
It will have the simplest user interface you could imagine. I finally cracked it.
삼성이 일단 발 빠르게 대처를 했습니다. 애플이 TV를 만들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Apple TV가 출시되었던 2007년도부터 나오던 얘기였으니, 아마 그간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번 행사에 소개된 내용을 훑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스마트 인터랙션(Smart Interaction)’이라 명명된 동작인식, 음성인식, 그리고 얼굴인식 인터페이스입니다. 리모트 없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 데모룸에서 시연하는 것을 동영상을 찍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흥미로우나 아직 멀었다.’ 입니다. 방법론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의 문제, 기술적/경험적 완성도의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원초적 고민의 문제는, 음성이나 동작은 모든 제어를 대체할 수 없고 모든 상황 또는 환경에서 사용될 수는 없는, 보조적 UI로서의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인터페이스 방법론이라는 것입니다.
기술적/경험적 완성도의 문제는, 아직도 인식률이나 반응 지연, 그리고 물 흐르듯 연결되지 못하는 일련의 제어 경험이 답답함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스마트 인터랙션에 대한 데모룸을 따로 설치한 이유가 주변 소음과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댁내에서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얘들아, 좀 조용히 해봐, 하이 TV!, 하.이.T.V!” “야, 네가 손을 들고 있으면 어떡해! 내 손이 아니라 네 손을 잡고 있잖아!”
Q&A 시간에도 이런 우려에 대한 질문들이 몇 가지 나왔었습니다. 보통 가정에 설치된 TV는 케이블 셋탑박스를 통해 제어하는데, TV에 내장된 인터페이스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IR 블라스터‘를 사용하면 된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또 다른 질문은, 조명을 끄고 TV를 볼 때도 동작이나 얼굴 인식이 제대로 되느냐는 것이었는데, 구체적으로 가능한 조도의 수치를 말씀하시진 않고, 유럽의 어두운 조명 환경에서도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볼륨이 클 경우 음성인식에 제약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삼성이 원거리 음성 인식을 최초로 상용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기술(전처리 기술, 에코 캔슬러 기술 등을 언급)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기술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체감 만족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삼성 스스로도 ‘리모트 없는 인터페이스’를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음성 인식과 터치 제어가 되는 리모트와 터치 마우스와 풀 쿼티 자판을 갖는 리모트를 준비해 내고 있는 자기모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음성과 동작만으로는 모든 제어가 되지 않으며, 원거리 음성 인식이 원활치 못할 경우가 있으며, 문자를 입력하는 다른 방법은 여전히 찾질 못했다는 것이지요.
혹시 다른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가능성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배포될 SDK 3.0에 이런 음성, 동작, 얼굴 인식에 대한 API가 공개될 예정이라는데, 로비오(Rovio)의 앵그리 버드(Angry Bird)에 이미 동작 인식을 통한 게임 플레이 인터페이스를 적용하여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최초로 앵그리 버드를 TV에 적용했다고 하는데, 이미 로쿠(Roku) 박스를 통해 적용된 바가 있으니 그렇게 말하기도 좀 민망합니다.)
다음은 ‘스마트 컨텐트(Smart Content)’에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소개된 것은 우선 ‘패밀리 스토리(Family Story)’라는 것으로, 가족 간에 사진 등의 미디어를 공유하고 메시지를 남기거나 기념일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기술적 서비스로 같이 소개된 것이, ‘웹 스토리지(Web Storage)’와 ‘올쉐어 플레이(Allshare Play)’, 그리고 ‘스마트 홈 케어(Smart Home Care)’-TV 내장 카메라를 통한 원격 댁내 비디오 감시-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뭐 기술적 서비스야 클라우드 기반의 미디어 공유라는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 치고, 왜 패밀리 스토리 같은 ‘서비스’가 스마트 컨텐트라고 소개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서비스의 컨셉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디어 공유 서비스? 메신저? 스케줄러? 보다 결정적 의문은, 왜 가족끼리? 왜 TV에서? 왜 삼성이?
스마트 컨텐트의 나머지 두 항목은 ‘피트니스(Fitness)’와 ‘키즈(Kids)’입니다. 이건 피트니스 동영상 컨텐트와 어린이용 컨텐트를 서비스하겠다는 것이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그런 카테고리 컨텐트의 오픈 마켓을 말하는 것인지, 다른 애플리케이션들과 무슨 차별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Q&A에서 질문을 드렸지요. 답변은, 오픈 마켓은 아니며 삼성이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고 컨텐트를 소싱하는 것이고, 다른 앱과의 차별은 없고 같은 컨텐트가 앱 마켓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패밀리 스토리도 그렇지만, 삼성이 직접 서비스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서비스 시나리오나 UI 등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피트니스의 예를 들자면, 위딩스(Withings)의 와이파이 체중계와 연동하여 왜 굳이 TV에서 측정 그래프를 관리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며(이미 웹/아이패드/아이폰으로 관리가 되는 위딩스의 측정 자료를 TV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을까?), 운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하기 위해 화면을 쪼개어 ‘버추얼 미러(Virtual Mirror)’ 기능을 집어넣었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전신 거울이지 이런 손바닥 거울은 아니라는 것, 등등.
마지막으로 ‘에볼루션 키트(Evolution Kit)’ 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뿐 아니라 프로세서 등의 하드웨어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TV라는 개념이 상당히 신선합니다. 외신의 주목도 많이 받았었죠. 매출 압박이 심한 가전 사업에서, TV를 바꾸지 않고 키트만 업그레이드를 하는 모델이라는 게 먹힐 수 있을까 의아스럽긴 합니다만, 우선 이런 스마트TV에 관심을 둘 젊은 층에는 한가지 구매 동인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다만, 해마다 키트를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기본 프레임웍이 바뀌어서 키트 업그레이드 자체가 더는 힘들게 되는 시점이 분명 올 텐데 아마 그 시점은 기존 TV의 대략적인 교체 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해봅니다. 차별화에는 성공하겠지만,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되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선, 기술적 선도, 서비스 영역으로의 확장, 새로운 경험의 제안이라는 어려운 숙제들을 실제적인 모습으로 구현해 내고 상용화-가장 중요-한 삼성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못하는 기대 수준의 문제가 있습니다. 보다 기술적 최적화와 자연스러운 경험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번 제품의 캐치프레이즈가 ‘The Future of Smart TV, Now’였죠. ‘지금[Now]’는 아직 아니고, 여전히 ‘미래[Future]’ 어딘가에 있을 그 TV를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게몽]
+ 참! 명승은 님(@ringmedia)의 강연도 있었습니다. ‘스마트TV 시대, 스마트 미디어 키워드’라는 주제였습니다. 키워드는 ‘Over The Top’, ‘Content Curation’, ‘2nd Screen’이었습니다. 참고로.
RT @gemong1: 어제 삼성 스마트TV 블로거데이에 다녀온 소감을 적어봅니다. http://t.co/DejFXSiR 캐치프레이즈는 ‘The Future of Smart TV, Now’. 하지만 저의 결론은 ‘NOT Now’.
가격은 어떤가요? 충격적인 가격을 애플처럼 낼 수 있을까요? "@gemong1: 어제 삼성 스마트TV 블로거데이. http://t.co/Omklmz5l 저의 결론은 'NOT Now'."
제스쳐 인식은 어깨가 시려서 힘들다 http://t.co/rdokl63G
아쉽게도 가격은 최상급 모델을 상회. 46인치 3백만원대 http://t.co/RXq0QEeV RT @woorami 가격은 어떤가요? 충격적인 가격을 애플처럼 낼 수 있을까요? @gemong1 삼성 스마트TV http://t.co/ae5i6MbV
여전히 ‘미래’에 두고 온 스마트TV: http://t.co/uNJ7e2Rx
참고: 어제 삼성 스마트TV 미디어 데이에 대한 삼성 공식 블로그 자료 http://t.co/vztEIal9 Smart Interaction에 대한 CES 자료 http://t.co/qdHIhAHG 그리고 제 글 http://t.co/ae5i6MbV
꼼꼼이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1월 15일자 CES 블로깅을 통해 정리한 걸 직접 확인하신 셈이네요^^
근데 ‘음성이나 동작이 보조적 UI로서의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몽님의 일관된 주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듭니다. (동작의 한계야 그렇다 치더라도) 음성은 아직 그 가능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인식률의 문제. ex)여러 사람이 있거나 조금 소란스러운 상황, 또는 캄캄한 상태에서 영화를 볼 때.
2. 불가한 상황의 문제. ex)애 재우고 볼 때.
3. 과장된 편리함의 문제. 이것은 과연 음성이나 동작이 현재의 리모컨보다 ‘편리’한 UI가 맞느냐는 문제입니다. 리모컨으로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 될 걸, 소리를 지르거나, 애써 손을 들고 휘두르고 있는 것이 편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죠.
물론 WOW와 재미 요소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 UI가 모든 제어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삼성에서 제시한 솔루션의 현주소도 그렇습니다. 음성/동작 만으로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스마트 터치 리모트나 키보드 액세서리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식률이나 UX가 대단히 진보 발전하여 지금의 얘기가 우습게 들리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까진 약간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나올지 모를 애플의 TV가 어떨지 살짝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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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ong님, 혹시 본 행사에서 질의하신 분 아닌지요?
맞습니다만…ys라면 혹시 제가 아는 분?
저는 오래 전부터 gemong님 블로그와 트위터 애독중인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업계 관계자 통해 gemong님이 업무면에서는 물론 인품 역시 대단히 멋진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위 행사장에서 뵌 것 같아 궁금하던 차에 들렀습니다. 질의하신 분이 맞군요. 스타일도 멋지십니다. ^^ 다음에 뵙게되면 인사드릴께요.
뉘신지…-_-;
[…] 삼성전자를 필두로 최근의 다음TV까지 스마트TV에 대한 마케팅이 날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마트TV의 핵심적인 가치인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실적은 미미합니다. 핵심이 잘 안된다면, 스마트TV 장사는 가망이 없겠지요. 이쯤 되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TV에서 과연 능동적인 소비가 가능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스마트TV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런 게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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