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

[요약] 암호화폐는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향해 ‘행동’하도록 동기 부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율 거버넌스를 움직이게 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로, 게미피케이션 요소가 가미된 ‘내기’ 형태의 투표 방법이 유효하게 동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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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chole Burrows @Flickr (cc)

이 글은 더비체인에 기고한 글임. 기고글은 아래 링크 참조.

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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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를 통한 동기 부여 메커니즘

암호화폐가 다양한 네트워크를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이유는, 더 많은 참여자를 네트워크에 끌어들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행동’하게 하는 동기 부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동기 부여 없이, 지속 가능한 동기 부여 방법이 있다면, 굳이 암호화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 같은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이 세계 최대의 집단적 백과사전 집필이라는 자원봉사로 동기 부여된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메가 플랫폼도 다른 방식의 동기 부여가 동작한다. 우수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다(사실은 자신의 프로필/행동 데이터와 희소한 시간/관심 자원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에 무감각할 뿐이지만).

암호화폐를 동기 부여로 동작시키려면, 자원봉사나 무료 서비스/콘텐트 제공과는 다른 멘탈 모델이 필요하다. 즉, 바람직한 일을 한다는 명분, 그리고 보상을 받는다는 이득이 공존해야 한다. 명분만으로는 지속력을 지탱하기 힘들 수 있다. 언제나 위키피디아는 독지가의 기부를 절실히 독려할 뿐, 언제든 쇠퇴할 수 있다.

경제적 보상을 설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성 자체를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이익을 너무 좇다 보면, 원래 의도했던 목적과는 다른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전자 화폐 거래 데이터를 안전하게 블록에 생성하는 대가로 보상을 받고, 스팀잇의 작가와 추천인들은 좋은 글을 쓰고, 추천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채굴자의 집중화와 스팀잇 고래의 영향력 문제 등은 이런 이익 기반 보상 체계에 대한 문제를 드러낸다.

특히 자율 거버넌스를 암호화폐로 설계하려면, 최대한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방식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에서 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대명사인 투표 시스템일 것이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 등 투표로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기’ 등 게미피케이션 요소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암호화폐에서 유독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자신의 토큰 얼마를 ‘내기’로 걸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 종류의 몇 가지 고려되고 있는 개념들을 살펴보자.

  • 퓨타키(Futarchy)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 로빈 핸슨(Robin Hanson) 교수가 이미 2000년에 처음 제창한 방식으로, ‘예측 시장’ 기법으로 미래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퓨타키가 괴상한 용어 같이 들리지만, 미래(future)와 정부(archy)의 합성어일 뿐이다. 원숭이와 애널리스트의 주식 투자 결과에 차이가 없더라는 자극적인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전문가라도 미래 정책 방향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런데, ‘군중의 지혜’를 모으면 신기하게도 근사치로 잘 맞춘다는 것이다. 개별 예측은 터무니없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커다란 단지 안을 꽉 채운 젤리빈의 숫자를 맞추는 실험) 이것을 거버넌스에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GDP를 증대하는 정책에 내기를 한 사람들은, 실제로 GDP가 증대된다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버넌스 로직은, 사람들의 지혜가 모인 정책, 즉, GDP를 증대할 것으로 확실히 예측되는 정책을 채택하면 된다.

  • 쉘링코인(SchellingCoin)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터린이 2014년에 제안한 방식이다(참 대단한 친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쉘링(Thomas Schelling)의 초점(focal point; 이름을 따라 ‘쉘링 포인트’라고도 한다) 개념을 도입한 것인데,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했을 것으로 기대하는 바에 대한 기대치의 합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선호에 기반하여 선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서로 선택했을 것으로 기대하는 최대한 객관적인 선택지로 의사 결정을 조정하는 것이다. 쉘링코인은, 참여자가 어떤 목표하는 값들을 제시하면, 그 중간값을 결과로 채택하고, 중간값에서 편차가 작을수록 보상을 더 가져가는 구조이다.

  • 이차방정식 투표(Quadratic Voting)

이차방정식 투표는 2013년 시카고 대학(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글렌 웨일(Glen Weyl)이 제안한 투표를 사는 방식이다. 찬반 의사 결정을 하는 투표자가 구매할 투표수의 제곱 가격으로 투표를 사는 것이다. 이는 어떤 투표 결과가 개인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소수인 동성 결혼의 합법화 같은 사안), 1인 1표 방식이 가지는 ‘다수의 횡포’를 방지하면서도, 돈으로 너무 많은 투표를 사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절묘한 방식이다. (이차 방정식 그래프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치솟는 것을 상상해 보라)

  • 토큰 선별 목록(Token-Curated Registries)

컨센시스(ConsenSys)의 개발자인 마이크 골딘(Mike Goldin)이 제안했다. 이는 고품질 목록을 원하는 소비자, 그리고 이 목록에 들어가길 원하는 제공자의 니즈를 조율한다. 예를 들어, 퀄러티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시빌(Civil) 프로젝트가 참여하는 저널리스트의 물관리를 위해 이 방법을 쓴다. 방법은 이렇다. 시빌에 뉴스룸을 개설하려는 저널리스트는 일정 금액의 토큰을 예치해야 한다. 만약 어떤 구성원이 그 저널리스트가 예를 들어 언론 윤리 강령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뉴스룸 개설을 반대한다면, 예치 금액과 동일한 토큰을 걸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다른 구성원들은 자신의 토큰을 걸어 투표하고, 전체 토큰 수량에 따라 결과가 가결로 결정되면, 저널리스트의 예치금은 몰수되어 문제 제기자 및 그 지지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부결되면 그 반대가 된다.

  • 큐레이션 마켓(Curation Market)

역시 컨센시스의 개발자이자, 음악 서비스인 우조 뮤직(Ujo Music)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이먼 드 라 루비어(Simon de la Rouviere)가 제안한 큐레이션 마켓은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우선 흥미로운 점은 토큰 발행 방법이다. 큐레이션 마켓의 토큰은 구매자에게 이더(ETH)를 받고 발행되며, 받은 이더는 공공 기금에 보관된다. 토큰은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가격이 선형 또는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즉, 초기 구매자일수록 싼 가격에 토큰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초기 투자자들은 토큰을 공공 기금에 팔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기금의 이더를 챙겨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토큰은 특정 주제에 대한 양질의 큐레이터에게 본딩(bonding)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여러 본딩 토큰의 양 만큼의 영향력으로 좋은 콘텐트 또는 제안 등을 추천할 수 있다(마치 스팀잇 스팀 파워처럼). 그 결과의 가치가 높다면, 토큰의 가치도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서 주안점은 이런 것이다. 이차 시장(외부 거래소) 없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과 토큰 발행량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가치에 따라 자율 조정(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발행되고 팔고 나가면 소각)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해진 발행량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가격 변동성이 없고, 다만 큐레이션 품질 등 원하는 네트워크의 목적에 따라 가치가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다.

위에 소개한 방법들은, 투표라는 단순한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그 결과의 품질을 위해 노력할 때 보상이 더 클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에, ‘게임’적인 요소가 있다. 보상은 경제적 이익에만 국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측 시장의 경우, 예측 정확도 이력이 높은 사용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평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사용자의 예측 정확도 점수를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경제적 이득 못지않은 동기 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암호화폐가 주는 동기 부여는 네트워크의 목적에 잘 부합되도록 ‘노력’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실제로 잘 돌아갈지는 아직 모른다. 모두 지극히 초기 실험적이다. 한 가지 큰 우려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행위를 위해 토큰을 살까 하는 점이다. 그 네트워크의 가치를 원하는 사람은 살 것이다. 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네트워크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된다. 실은 거의 모든 초기 인터넷 서비스 사업이 원래 가지고 있는 문제일 뿐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모일까?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 네트워크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암호화폐가 분명 동기 부여로 동작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이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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