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실시간 편성[pseudo-live programming]

방송의 기본은 실시간 편성[live programming]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온디멘드(on-demand)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시간 편성이 없어질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뭔가 다른 장치가 필요합니다. 실시간과 온디멘드의 하이브리드 편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풀어 보겠습니다.

TV 방송은 왜 실시간 편성을 할까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술적 이유입니다. 방송[broadcasting]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신호를 계속해서 내보낼 수밖에 없어서, 내보내는 프로그램의 순서를 미리 정해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상업적 이유입니다. 광고 기반의 수익 구조이기 때문에,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시에 광고를 시청해 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스크린 앞에 앉아 있게 하는 것이 실시간 편성의 효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단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의 시대입니다. 브로드캐스팅이 아니라 온디멘드가 새로운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방송도 뭔가 변화의 조짐이 있습니다.

요즘 푹(pooq)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MBC와 SBS의 합작사로, 실시간 지상파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시 보기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푹 팀과의 만남에서 이런 문제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앞으로의 방송은 라이브가 아니라 온디멘드에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데에는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장이 흘러가게 될 때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방송사 매출 구조의 변화죠. 라이브를 통해 광고 매출을 올리던 것이, 라이브 동시 시청이 점점 줄고 온디멘드를 소비하게 됨으로써 후자의 매출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녹록지 않죠. 비슷한 교훈을 이미 신문사라는 선례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방송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세상은 온디멘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라이브엔 분명 자기 잠식[cannibalization]의 위기 요인입니다. 하지만 애플의 팀 쿡이 아이패드가 PC 시장을 잠식하는 데 대해, ‘자기 잠식은 우리에게 [오히려] 큰 기회’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새 밧줄을 잡아야지 썩은 동아줄에 버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DIGXTAL LAB에서, 푹을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사용해 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실시간 방송의 가치는 꼭 그 시간에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빨리 최신의 컨텐트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시청자의 니즈는 실시간성이 아니라 최신성에 있다는 것입니다. 최신 컨텐트가 릴리즈가 되면, 그 즉시 시청하는 것이 최선이고, 여의치 않다면 가장 가까운 여유 시간에 시청하는 것이 차선입니다.

점점 개인화되는 미디어 환경은 현재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청 시간에 대한 제어권을 온전히 시청자에게 부여하는 것, 즉 온디멘드가 ‘대세’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면, 이제 문제는 그 제어권의 부여 시점에 귀결됩니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죠. 시청자의 니즈는 최신성입니다. 방송이 되는 즉시, 그 이후부턴 언제든 온디멘드가 되는 것이 최선입니다. 즉, 온디멘드의 릴리즈 시점은 방송 시작 시점이 되어야죠.

이건 현재 구조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온디멘드를 위해 방송 컨텐트를 인코딩하는 프로세스가 방송 종료 이후에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빨라도 몇 시간은 기다려야 온디멘드가 가능합니다. 티빙에선 방송 직후 바로 제공하는 ‘퀵 VOD’ 서비스도 제공한다지만, 다음의 티빙측 설명을 들어보면 역시 그 한계-방송 직후-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TV프로그램 본 방송 종료 직후 녹화·검수∙노출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원터치’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발빠른 VOD 서비스가 가능케 됐다.

방송 즉시 온디멘드 서비스가 아주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스포츠 등의 실시간 이벤트를 제외하곤, 대부분 프로그램은 녹화 편집된 비디오입니다. 온디멘드도 비디오를 틀어주는 것이니, 개념상으론 차이가 없습니다. 그걸 방송에 거느냐, 인터넷에 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어쨌든 지금은 방송 테이프를 인터넷에 걸려면 인코딩이 필요합니다. 방송 컨텐트의 디지털화와 포맷의 운용에 관한 문제입니다. 온디멘드 서버 연동 등 시스템적인 혁신이 일어나야겠죠.

두 번째, 아까 나왔던 자기 잠식의 문제입니다. 동시에 광고를 봐야 하는데, 관객이 시간 축으로 흩뿌려지게 됩니다. 시청의 연속성도 없어지기 때문에, 프로그램 사이 광고 개념도 힘을 잃게 되겠죠. 광고 시스템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온디멘드와 실시간의 크로스 플랫폼 정도가 아니라, 온디멘드을 기본으로 하는 광고 수익 모델의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들이 타임머신 기능 같은 단말의 DVR 서비스를 통해 이뤄졌었습니다. 이 서비스의 대명사인 티보(TiVo)는 일찌감치 미국에서 히트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스스로 작동을 해야 하는 불편함과 다른 온디멘드 서비스의 발달로 요즘은 많이 동력을 잃은 모습입니다.

이것이 방송 인프라 적으로 제공이 된다는 상상을 해봅시다. 방송의 전달망이 인터넷망을 기본으로 한다는 전제는 있어야겠죠. (방송+인터넷 하이브리드 형태도 상관없겠습니다만.) 편성의 개념도 많이 바뀌어야겠죠. 그렇다고 온디멘드로 아무 때나 올리게 되진 않을 겁니다. 프라임 타임 경쟁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컨텐트를 밀어 넣는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포스트 프라임 타임의 틈새 경쟁에서도, 릴리즈 시간 전략이 더 중요해 질 수 있겠죠.

소비자에겐 프로그램의 접근이 어떤 모양새가 되어야 할까요? 현재의 EPG 같은 개념은 아닐 겁니다. 아마 트위터의 타임라인 같은 모양이 더 맞지 않을까요?

트위터 타임라인 같은 유사 실시간 편성

트위터 타임라인 같은 유사 실시간 편성 예시

편성이 시작된 시간 이후에는 언제든 처음부터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늦었다고 중간부터 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뒤로 돌려보는 트릭 플레이(trick play)도 자유로워집니다.

실시간 방송과 온디멘드의 하이브리드 편성, 이것을 유사 실시간 편성[pseudo-live programming]이라고 이름을 붙여 봅니다. 실시간으로 릴리즈는 되지만, 실시간 방송이 강제되는 것이 아니고 ‘대기’ 되는 것이므로,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게몽]

 

+ 위 사진은 플리커의 skpy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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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houghts on “유사 실시간 편성[pseudo-live programming]

  1. 항상글 잘보고 있습니다. 기술의 제약이 큰건 아닙니다. 이미 몇년전에 제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 종료 직후 서비스 개시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비디오 자체를 다루는건 어렵지 않은데, 채널정보가 정교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송출대행사와의 업무 협약으로 충분히 풀수 있는 문제구요. 결국 PP들의 비지니스 이해관계여부가 키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 네, 결국 비즈니스 문제입니다. 방송사가 라이브 매출의 하락을 어떻게 뉴미디어에서 극복할 것인가의 의지 문제겠지요. 자기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딱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의견 고맙습니다.

  2. 비디오 디스커버리 서비스는 필패냐 기회냐 | DIGXTAL

  3. 비디오 디스커버리 서비스는 필패냐 기회냐 | 르호봇

  4. 변화는 느리다. 하지만 전면적이다: IP 기반의 주문형 스트리밍 TV 경험이 기존 TV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 | Empathy Powered

  5. 인터넷 실시간 편성 솔루션을 개발한 업체에 있습니다. 실시간 편성으로 검색하다가 좋은 글 보게 되었네요.. KBSnSport의 인터넷 동영상 대체광고 시스템을 금번 구축했구요. 혹시나 비슷한 분야인 것 같아 글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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