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를 기대한다

[요약] 암호화폐는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을 향한 정보 기술의 궁극적 이상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 않고, 거대한 장벽에 다다랐다.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의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와 ‘합의 가치 시스템’ 설계의 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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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Ian Burt @Flickr (cc)

이 글은 테크M에 축약하여 기고한 컬럼의 원 글임. 기고글은 아래 링크 참조.

암호화폐가 중요한 플랫폼 기술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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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기술은 왜 플랫폼 기술로서 중대한가?

암호화폐는 왜 플랫폼 기술로서 ‘중대’한가? (‘중대>>중요’의 무게감이다) 누구나 암호화폐에서 전환적 기술로서의 잠재력을 보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람마다-개발자, 투자자, 사업가, 정책자, 일반인- 보는 관점이 조금씩은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리고, 이 통제 불가능한 화폐 시스템을, 어떤 이는 궁극적 시장 자유주의의 메커니즘으로 보고, 정치적 반대쪽의 또 다른 이는 이상적 아나키스트 장치로 본다. 따라서 내가 플랫폼으로서의 암호화폐를 ‘중대’하게 생각하는 관점을 명확히 전달하려면, 내 배경과 관심사에 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그러니, 더 나은 이해를 위해 보잘것없는 내 얘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좀 양해해 달라. (공지: 이 글은 투자 정보와 아무 상관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다른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실명 소개는 최대한 배제했다)

나는 시쳇말로 대기업 ‘기획자’ 출신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규 사업 개발이 주 업무였다. 내가 대기업에 속해 있을 시절, 신규 사업 개발 업무는 대개 내부의 직원으로 구성된 팀에서 시작했다. 어떤 때는 없는 시장을 그리는 맨땅에서 시작했다. 심지어 뭐든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오라는 지시도 받았었다. 그래서 보통 전략 업무가 병행됐다. 디자이너나 개발자 같은 인력은 보통 외주의 영역이었다. 말하자면 그런 기획팀은 순수한 기획자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나를 보고 기획자 출신이냐고 물을 때, 선뜻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요즘 흔히 말하는 웹/앱 서비스 기획자하고는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이력은 이동전화 회사의 엔지니어로 시작했지만, 십수 년 전부터 같은 회사의 신규 사업 발굴 업무로 전환하면서 지금까지 주로 IT/미디어 분야의 신규 플랫폼 사업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플랫폼’ 개념의 기원은, 밀레니엄 초기 이동전화 회사에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을 만드는, 이동 전화 ‘네트워크’ 사업에서 ‘플랫폼’ 사업으로의 가치 사슬 전환 확대를 모색하는 신규 사업 발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들이 언제부터 플랫폼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는지 궁금하여 과거 보도자료를 검색해 봤다. KT는 2012년 이전 자료가 없어 확인이 불가하고, SKT를 보니 2001년에 처음 등장한다. 맞다, 대략 닷컴 거품이 난리를 치던 바로 그 무렵이다). 즉, 나는 어떤 특정 플랫폼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보다는, 조금 큰 그림에서 새로운(또는 세상에 없던) 플랫폼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일에 더 힘을 기울여왔다. 물론 나도 UX라는 단어가 생길 무렵부터 대규모 디자인 씽킹 프로젝트도 진행해 봤고, 시나리오나 기능 정의서도 수없이 그려봤지만, 다 요즘 말하는 여러 기획 방법론의 초창기 버전쯤 되고, 요즘 날고 기는 기획자에 비교하면 나 스스로 기획자 출신이라고 말하기가 좀 민망해진다. 말하자면 기획자들이 고공 낙하하여 새로운 전투지에 안착하여 전문 기획자 그룹으로 변모하고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수송기에서 아래 지형을 살피고 있는 전략가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이고, 나름대로는 그런 나 자신을 ‘기술 사회 미래전략가(풀어쓰자면, 미래 기술 응용과 사회 작용 연구자)’라고 정의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암호화폐 기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우선 고려해 주길 바란다.

시야를 좀 더 확대해서 전투지를 조망하려면 수송기의 고도를 더 높이는 메타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내가 말하는 플랫폼의 뜻을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플랫폼은 다양한 목적의 서비스(생산자)와 다양한 목적의 사용자(소비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거래를 하는 장소(시장)이다. 원래 뜻 ‘승강장’을 떠올려보자. 플랫폼은 아마 어떤 형태로든 어느 시대에나 있었겠지만, 정보 시대의 플랫폼을 구별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디지털’이고, 따라서 이 ‘디지털’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나는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디지털’의 특성은 ‘개방성’이고, ‘컴퓨터’와 ‘인터넷’은 이를 특징짓는 위대한 두 발명품이라 생각한다. 컴퓨터는 대중에게 저렴하고 고품질의 생산과 소비의 도구를 제공하여 생산자의 문턱을 낮추고 확산시켰으며, 개개인의 소비 기회를 극대화했다. 또한,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일방적인 전달(생산→소비)이 아닌, 거대한 양방향(생산↔소비) 미디어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시대의 플랫폼은 이 폭발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용광로 같은 자유 시장이다. 우리는 비단 콘텐트 시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세계를 포함한 모든 것은 정보로 번역된다. 물건이 거래되고, 음식이 배달되고, 방을 빌려주고, 부품을 프린트하고, 자동차를 움직인다. 누구나가 자유롭게 정보를 생산하여 누구하고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완전히 개방된 시장이 열렸다. 거기에서 대중은 자유롭게 정보를 거래한다(그리고 돈을 번다). 이 벡터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권력이 분산되고 자유가 확산된다. 이렇게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플랫폼’은 한없이 개방된 공간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개방된 플랫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다. 아기 동영상부터 고품질 영화까지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생산자 누구나가 제한 없이 참여한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애플 앱스토어이다. 누구나 코딩만 할 수 있으면 앱을 등록할 수 있다. 애플 앱스토어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개발자에게 제한 없이 참여할 기회를 준다. 에어비앤비는 누구나 집에 남는 방이 있으면 사이트에 등록하고 전 세계로부터 손님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상업 숙박 시설에도 에어비앤비는 기회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플랫폼은 누구나 생산자로도 소비자로도 참여할 수 있는 평등의 장이고, 상호 소통의 장이다. 단순한 디지털 시스템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기존의 방송 플랫폼을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에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같은 거창한 이름을 마구 갖다 붙이는 것은 우리 시대 플랫폼의 본질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한다. 우리가 정보 시대의 나아갈 방향을 논할 때,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생산 도구를 대중화하고 소비 접근성을 극대화하면서, 생산과 소비 각각의 장벽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모든 것이 정보로 번역되는 거대한 세계 시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개방된 플랫폼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개방된 플랫폼은 우리에게 권력을 분산시켜 나눠 주고 더 많은 자유를 주었나? 컴퓨터는 개방된 플랫폼이다. 누구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누구에게나 복제되어 돌릴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도 거대한 개방된 플랫폼이다. 누구나 정보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공유하고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방된 땅에서 권력은 여전히 집중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 좋게 그리고 머리 좋게 운영 체계 플랫폼을 독점했다. 곧이어 핵심 소프트웨어(오피스 제품들, 인터넷 브라우저 등) 시장을 장악했고, 경쟁 제품들은 사라졌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거인 플랫폼들은 지구 전체를 뒤덮으며 뿌리를 내리고 사용자 트래픽을 빨아들이고 있다.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유망한 스타트업 서비스는 가장 선호하는 출구로서 앞다투어 거인의 한 뿌리가 되길 자처한다. 그럼 어떤가? 우리는 고품질 소프트웨어를 제공받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훌륭하면서도 대부분 무료다. 언제 어디서나 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세상에 공유할 수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넘치도록 널려있다. 기술이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그런 혜택을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다. 보통 다양성이 없는 시장은 건전한 경쟁이 없는 죽은 시장으로 본다. 그래서 독과점법 등으로 규제를 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업들은 국경 없는 시장에 사업 영역 구분도 모호하여 어떻게 효과적으로 규제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오히려 디지털 산업에서 독과점은 가장 우선시되는 사업 전략으로 칭송받는 분위기다. 지난 40년간 시장 자유주의가 절대 선처럼 떠받들어져 온 세상에서, 더욱이 현시대의 경제를 이끄는 디지털 산업에서 규제는 악일 뿐이다. 여기선 시장 선점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한 압도적 1등 전략이 기본 공식이다. 물론 언제든 새로운 스타트업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기존 거인들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다 그렇게 컸다. 하지만 빅데이터가 점점 쌓이고 인공 지능 등의 알고리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용자의 행태를 분석해 최대한 자기 플랫폼에 묶어두는 힘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사용자들은 무료와 편리함의 이득을 얻기 위한 대가로 자신의 데이터를 구글과 페이스북에 기꺼이 헌납하고 있다. 그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 기계에 들어가 거인 플랫폼이 사용자의 트래픽을 극대화하도록 활용되고, 플랫폼은 더욱더 강력해진다. 거인을 위한 완벽하고 멋진 선순환이다.

그리고, 잠깐, 우리가 얻는 이득의 실체는 무엇인가?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흐르는 이 거대한 트래픽의 물결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료+광고=관심 경제. 즉, 우리는 우리의 희소 자원인 ‘관심’을 판다. 우리가 얻는 것은? 재미. 그게 끝이다. 아니, 정보를 얻는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일부는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을 돌아가게 하는 건 그런 진지한 지식이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최대한 확보하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는 과정(보통 우리는 이것을 마케팅이라 부른다)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부분 충격적인 뉴스 (제목), 눈요기, 엔터테인먼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것에 더 관심을 소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차곡차곡 플랫폼에 쌓이고, 그것을 알고리즘 기계에 넣어 돌리면,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전이 나온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던가. 우리는 그 공짜 서비스를 선이라고 여기고, 우리의 소중한 관심 자원의 가치, 우리가 헌납하는 데이터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여 내던지고 있다. 재미를 얻기 위해 소비한 희소한 관심 자원(=시간)의 기회비용을 생각해 보라. 게다가 우리가 이미 교과서로도 배웠듯이 사기업의 제일 목표는 이윤 극대화이지 절대 사회 공헌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100% 이윤 극대화에 사용된다. 보험회사는 알고리즘으로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고객을 찾아내 보험을 판매하고, 대부회사는 재정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독이 되는 고리 대출을 권하는 광고를 내보내도 이상할 것 없다. 그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불법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다.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듯이 그 정보가 권력 기관과 공유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는 감시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사실 수십억의 사용자가 스스로 내던지는 그런 가치들로 채워져 있다. 사용자가 기업 가치의 핵심인데도 강화된 관심 중독 처방 말고는 사용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지분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런 정보 기술의 오용 또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캐시 오닐(Cathy O’Neil)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은 불평등을 프로그램하고 있는 대량살상 수학 무기라고 경고한다. 팀 오라일리(Tim O’Reilly)는ᅠ우리가 글로벌 엘리트의 손아귀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역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순간에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는 디지털 생태계를 관통하고 있는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디지털 선구자들은 자유의 기치 아래 오픈 소스와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 배포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가치는 그런 자유 노력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이 깃발이 변색하였다. 그것은 바로, 정보가 무한히 복제되기 때문에 한계 비용이 제로이고 따라서 디지털 정보, 서비스, 소프트웨어, 콘텐트는 무료라는 관념 때문이다. 일찍이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디지털 경제가 무료 기반의 비즈니스로 돌아가는 새로운 시대에 돌입할 것이라 규정했다. 그는 이 경제에서는 돈이 아니라 관심과 평판이 희소성 자원이 되고, 돈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새로운 화폐가 되어 구글 같은 회사가 이 새로운 경제의 중앙은행 역할을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 부작용은?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하던 사람들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 눈알 관심 자원은 정보 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양과 별 상관이 없다. 평판은 때론 팔로워 수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일 뿐, 그 열매를 따 먹는 것은 또 다른 무한 경쟁일 뿐이다. 우리는 좋은 정보를 올바르게 보상할 방법도, 좋은 정보를 생산할 동기부여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돈과 권력은 새로운 중앙은행에 집중되고 있다. 디지털 선구자들이 개방의 가치로 내세웠던 ‘자유로운(free)’ 무엇이 ‘공짜의(gratis)’ 무엇으로 잘못 해석되었다. 이제는 공짜 서비스가 아니라, 진정한 가치가 참여자들에게 정당하게 배분되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해 보라. 권력의 분산과 자유의 확산은 분명 좋은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는 도구이다. 그런데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권력의 집중과 자유의 침해가 가속화되고 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목을 조르고 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의 와중에도 앤더슨이 무료 기반의 관심과 평판 경제를 비즈니스의 미래라고 선언하고 있었을 때, 다른 한편에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암호학을 이용해 정부와 기업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자칭 ‘사이퍼펑크(cypherpunk)’-암호(cypher)와 사이버펑크(cyberpunk)를 합친 말- 집단이다.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위키리크스, 비트토런트 같은 단체와 서비스들이 그런 기조로 생겨났다. 그중 한 명인 (아직도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사람이 2008년 앤더슨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의 논문을 하나 발표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개념의 피어-투-피어 전자 현금 시스템(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비트코인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사이퍼펑크 집단 밖에서는 비트코인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디지털 화폐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고 언제나 실패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암호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의미를 대번 알아차렸고 칭송하기 시작했다. 대략 2011년경부터 언론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나도 당시 언제나처럼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기에, 컴퓨터를 돌려 돈을 캔다는 개념이 신기해서 내 PC에서 며칠 돌려보기도 했었다. 물론 한 푼도 벌지 못했고, 관심은 곧 식었다. 비트코인이라는 시스템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지만, 비트코인을 사용하여 마약 등을 거래하는 암시장인 실크로드 설립자가 체포되고, 당시 최대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가 해킹 등으로 파산 신청을 하는 등, 대중에게 비트코인이 알려지게 된 사건들은 하나 같이 다 부정적이었다. 주류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돌려서 나오는 디지털 화폐라니, 그것이 비즈니스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장난감’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비즈니스적인 의미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이해하면서부터이다. 사람들이 이해한 블록체인은 불변의 분산 원장(또는 데이터베이스)이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데이터베이스라니, 정말 꿈의 기술처럼 들린다. 어떤 가치든 담을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그릇이 생긴 것처럼 들린다. 게다가 제3의 중개인이나 감독자가 필요 없으니 비용 절감도 된다. 그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중앙화된 플랫폼을 뒤엎을 수 있는 역사적 발명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기술의 가능성을 본 것도 바로 지점이다. 아까 말했지 않나. 우리는 권력이 집중되고 자유가 침해되는 무료 기반의 거대 플랫폼을 대체할 대안이 절실하다. 집중된 권력을 탈중앙화하고, 네트워크에 가치를 담아 거래할 수 있다니, 블록체인은 대안 플랫폼을 위한 완벽한 후보 기술로 보였다.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하고,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밀려 있던 IBM이나 인텔 같은 오래된 거인들도 반격의 호재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위 기업형 프라이빗 블록체인(또는 분산 원장)이라는 기술 정의가 시작되었다.

나도 플랫폼에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검토해 보기 위해 지난 몇 달간 수많은 자료를 뒤져보았다. 많은 저녁 소모임 행사에 참석해 귀동냥도 해보았다(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어 힘들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국제적 소모임이 일상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었다). 나의 이런 행적은 공교롭게도 또 다른 키워드의 트렌드와 그 궤적이 겹친다. 그 키워드는 바로 ‘암호화폐’였다.

그림 1.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검색 키워드에 대한 구글 트렌드 결과(2009.1-2018.1). 2013년 경 부터 두 키워드가 눈에 띄기 시작하며, 2015년~2016년에 ‘블록체인’ 키워드 검색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2017년 하반기부터는 ‘암호화폐’ 키워드가 역전하며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실은 2011년경부터 라이트코인 등 비트코인을 모방한 대안 코인들이 등장하면서, 암호화폐라는 용어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2017년부터이다. 세계 컴퓨터를 자처하는 스마트 계약이 강화된 이더리움의 등장으로, 수백 개의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블록체인보다는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구글 트렌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나는 이것을 또 다른 관점의 변화로 해석하는데, 바로 블록체인 기술의 중요성보다는 암호화폐라는 경제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네트워크 생태계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나카모토 블록체인이라는 장치는 네트워크의 성장과 함께 가치가 올라가는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가 필수적인 동인이 되어야 한다. 이 트릭이 바로 나카모토가 발명한 비트코인의 핵심 요소이다. 비트코인 외의 다양한 암호화폐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묘수를 풀어내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으며, ‘암호경제학(Cryptoeconomics)’이라는 용어로 이 어려움을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한다. 이더리움을 이끄는 비탈릭 부터린의 정의에 의하면, 암호경제학이란 특정 희망 속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과거에 발생한 메시지에 대한 속성을 증명하기 위해 암호학을 사용하고, 미래에 확보하려 하는 희망 속성을 장려하기 위해 시스템 내부에 정의된 경제적 인센티브를 사용한다.

사실 플랫폼의 분산화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냅스터, 비트토런트가 밟아온 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료 기반으로 참여자의 경제적 동인이 거의 무시되거나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대를 바꿀 힘은 없었던 것이다(아, 음악산업을 기울게 하긴 했다). 사용자가 네트워크에서 가치 창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강력한 분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블록체인이 아니라 암호화폐가 이 기술의 핵심이다. (이미 블록체인 형태와 무관한 암호화폐도 등장했다)

암호화폐의 어떤 문제에 집중해야 하나?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대안 플랫폼의 후보 기술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가? 우선 기업형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존 기업 시스템의 일부를 대체하는 기술로 적용될 수는 있어도 대안 플랫폼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당초 블록체인의 거대한 잠재력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이미 거품이 빠졌다. 아니, 여기에선 블록체인이라는 게 아예 필요조차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대표적인 기업형 블록체인 컨소시엄의 CTO는ᅠ “우리는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솔직한 고뇌의 결론을 내린다. 폐쇄적 네트워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없다는 데서 이미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시대를 바꿀 솔루션, 정부 유행어로 하면 4차산업혁명의 솔루션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본진(소위 퍼블릭 블록체인)의 사정은 어떠한가. 비트코인에 내포된 나카모토의 트릭은 말하자면 생명체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같은 것이다. 즉, 나카모토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가 환경 변화나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율 조절 장치를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채굴자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거래 처리 용량이 너무 적으며, 거래 수수료는 너무 높아서, 현실적인 응용은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비트코인은 붕괴하든, 고사하든,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 솔루션을 제시하며 수많은 대안 암호화폐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가혹한 현실 세계에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한 보장을 못 한다. 그런데도 각자의 암호화폐의 미래 가치 투자(다른 말로 ‘투기’)에 사활을 건 프로젝트들이 어마어마한 ICO 자금을 끌어들이며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돈 냄새를 맡은 투자자와 개미와 사기꾼들이 모여들고, 시장은 과열되고 가격은 요동친다. 정부, 아니 실은 전 세계가 당황했다. 아니, 4차산업혁명으로 써먹을 좋은 기술 아이템인 줄 알았더니, 허점투성이에 투기 도구였다니!

이쯤에서 열을 가라앉히고 정리를 좀 해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권력을 분산하고 자유를 확산하는 대안 플랫폼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암호화폐에 거는 기대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암호화폐는 기존 플랫폼의 인간(또는 자본)에 의한 거버넌스(또는 의사 결정 방식)를 자동화된 코드와 분산된 네트워크, 즉,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를 통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둘째, 암호화폐의 합의 가치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생산자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인으로서, 정당한 가치 생성과 분배, 그리고 자유로운 거래의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확장성, 수수료, 프라이버시, 상호운용성, 편의성 등), 또는 사회적으로(투기성, 에너지 낭비, 불평등한 부의 배분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지속적 기술 개발과 사회적 조정과 합의를 통해, 그리고 사용처의 목적에 맞게, 이런 개별 문제들은 해결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는 대중에게 권력 분산과 자유 확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네트워크가 지속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암호화폐의 성배이다. 이를 위한 하나의 돌파 실험(비트코인)의 시작이 수많은 복제와 변이로 이어져 마치 캄브리아기의 생명 대폭발과도 같이 진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암호화폐는 커다란 장벽에 도달했고 또 다른 획기적 돌파가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생명이 그러하였고, 인공지능 기술이 그러하였듯이, 곧 빙하기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메커니즘도 인공지능의 메커니즘도 그냥 사라져 버리기엔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끈질기게 버텨냈고 새롭게 태어났다. 암호화폐의 메커니즘도 정말 매력적이기에 빙하기가 와도 동굴 안쪽에서 열심히 버텨낼 동기는 충분하다. 새롭게 태어날 준비만 하면 된다. 지금은 우리가 그 얘기에 집중할 때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현재의 불완전한 암호화폐가 주는 교훈에서 대안 플랫폼의 두 가지 핵심 필수 요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
  2. 합의된 가치 시스템

“무슨 소리냐, 확장성 등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반박할 수 있다. 당면 문제 맞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기술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위의 두 가지 네트워크 ‘항상성’ 메커니즘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저쪽 절벽(이상 사회)으로 가는 외줄 타기라고 생각해 보자. 말하자면 손에 쥐어진 장대가 알고리즘 거버넌스이고, 앞에 놓인 외줄이 가치 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바로 그 외줄 타기 중이고, 끝까지 균형을 잡아 건너가야 한다. 속도, 바람, 신발, 옷…. 변수는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장대(알고리즘 거버넌스)와 외줄(가치 시스템)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거버넌스의 핵심 과제는 권력 집중 문제이다. 채굴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나카모토도 맨 처음부터 우려하던 바이다. 그는 한 IP 당 1 투표가 아닌 한 CPU 당 1 투표 방식을 택한 이유가 IP는 얼마든지 많이 할당하여 쉽게 네트워크를 전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누구든 쉽게 참여하여 그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하지만, 연산량이 늘어나면서 자본력이 없는 개인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지분 증명(proof of stake), 위임 지분 증명(delegated proof of stake) 방식 등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권력 집중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직 없는 것 같다. 필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 목적의 권력이 어느 정도 동작해야 하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과연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고르게 그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또 다른 거버넌스 문제는, 과연 알고리즘이 모든 거버넌스를 자동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코드가 법이고, 옳고 그름은 수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게 이 동네의 불문율 같은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확장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거버넌스 문제를 드러냈다. 개발자, 채굴자, 빅마우스 사이에 전쟁 같은 논쟁이 일었지만, 결국 견해차를 줄이지 못하고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캐시로 블록체인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활용한 ᅠ탈중앙화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꿈꾸며 호기롭게 시작한 ‘더 다오(The DAO)’ 프로젝트가 버그로 거액의 해킹 사고를 당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으로 이더리움 블록체인 분기를 결정한 것은 그 탈중앙화 자율 조직의 코드 규칙이 아니라 이더리움 재단이었고, 반대 세력의 이더리움 클래식은 다른 블록체인으로 분기했다. 나카모토가 가장 긴 블록체인을 선택함으로써 막으려 했던 블록체인 분기가 오히려 일종의 해법이 된 듯하다.

이렇게 거버넌스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알고리즘 외적인 의사 결정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알고리즘에 대한 흥미로운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자칫 의도되지 않은 오류를 가지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강제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자동화된 거버넌스를 어디까지 정의하고, 그 한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비스 약정 같은 블록체인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를 디지털 헌법으로 코드화하려는 노력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대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의 계층을 유지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자발적 ‘선의’ 같은 인간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주관적 거버넌스 계층의 가장 큰 해결 과제는 역시 권력 집중의 문제가 될 것은 자명하다.

규칙을 너무 복잡하게 코드화하는 것도 문제이다. 시스템 복잡성이 높을수록 오류 존재의 가능성이 높고 유지 보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이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튜링 완전성을 구현한다고 내세우는 스마트 계약은 버그 가능성을 높이고 보안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은, 이미 ‘더 다오’ 사태를 겪으면서 모두 인식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튜링 완전성을 조금 제한하더라도 더 엄격한 스마트 계약 작성 언어 규칙을 적용하려는 노력도 있다. 심지어 인공 지능으로 코드를 최적화한다는 프로젝트도 있다(그러나 아마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다). 또한, 누구도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옳고 그름을 합의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범위 내에서 거버넌스가 정의되어야 한다. 스마트 계약 언어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서술형으로 하려는 예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식이 동등한 수준으로 공유되지 않으면 정보 불균형이 일어나고 참여의 기회도 낮아진다. 자유는 그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억압된다. 비트코인을 칭송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프로토콜의 단순함에 있다. 오컴의 면도날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분권 알고리즘 거버넌스는 다음과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의사 결정 권력이 집중되지 않게 해야 하며, 최소한의 필수 공공 권력의 기회는 모든 참여자에게 최대한 평등하게 분산되어야 한다.
  • 알고리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의 범위와 해결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의 방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가장 단순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가치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나? 암호화폐에 대한 대부분의 공격은 그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고 가치가 제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가치는 네트워크 효과를 기대하는 미래 가치에 맞춰져 있다. 사실 단 두 사람만 가치를 인정해도, 가치가 생기고 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은 원래 복제 특성으로 희소성과 상반되는데, 비트코인은 말하자면 최초로 디지털 희소성까지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네트워크 참여자들 사이에 어떤 효용성이 있다면, 그것을 거래 가능한 가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가치 투자는 투기의 다른 말이다. 최근의 암호화폐 열기도 다름 아닌 투기 과열이었다. 이건 주식 시장과 똑같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가 악이면, 주식도 악이다. 지나친 투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단기 투자 수익에 집중하여 가치 변동성을 높이는 것은 암호화폐 자체의 기능에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생태계 유지를 위한 건전한 장기 보유에 대한 보상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네트워크가 잘 돌아가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참여자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 프로세스로 해결하고자 했다. 개발자나 검증을 하는 노드에는 정의된 보상이 없다. 여러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제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초기 자금을 ICO(Initial Coin Offering)라는 크라우드펀딩+IPO 형식의 전례 없는 투자 유치 수단으로 비교적 쉽게 끌어오고 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상반된 두 가지다. 첫째는 마음껏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 밑천이 생긴다. 두 번째는 마음껏 사기를 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이 생긴다. 프로젝트에 진정성이 있다면 개발자를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2~3쪽짜리 백서만 있는(또는 홈페이지만 있는) 사기 ICO도 판을 치는 것이 문제다.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터린은 스마트 계약을 활용해 개발자가 투자금을 수도꼭지 물처럼 일정 속도로만 사용하게 하거나 투자금 회수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시 시장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초기 암호화폐 보유자와 후에 참여하는 보유자 간에 가치 불균형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암호화폐 보유량이 힘을 가지는 구조라면 그 자체가 권력 불균형이 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네트워크의 미래 가치 말고, 다른 방식의 가치를 고민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포스팅한 글에 독자들이 추천하면 보상을 받는다든지, 노동 시간을 토큰화하여 인력 시장에 활용하는 예 같은 것이 있다.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 등의 외부의 안정된 자산에 가치를 고정하는 암호화폐도 있다. 내 생각엔 지금까지 선의의 자발적인 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수많은 소소한 노동과 권리가 가치로 환산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디지털 특성은 복제이고 그래서 무료라는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노동과 권리가 보상이 된다면 선의가 아닌 당연한 참여가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심 경제로 낭비되는 많은 시간이 건전한 노동 시간-예를 들면 내가 하는 행동이 별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또한,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 외에도, 평판 같은 사회적 보상 체계도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이타적이기도 하다. 우리 두뇌는 초콜릿을 먹는 것과 사회적 인정을 받는 쾌락 회로가 같고, 신체적인 구타와 사회적인 버림을 받는 고통 회로가 같다고 한다. 사회적인 보상도 경제적 보상 못지않게 우리 행동에 큰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평판 체계를 설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꽤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평판의 높낮이가 또 다른 권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암호화폐 보유량 자체가 투표 등의 힘을 가지는 경우인데, 그것이 마치 돈으로 산 평판의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있다. 또한, 평판은 아이덴티티를 전제로 하므로 프라이버시와의 절충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합의된 가치 시스템은 다음과 같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투기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적정 가치 안정성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기여도에 따라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 경제적, 사회적 보상 모두를 반영하되, 보상이 권력 수단이 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또 따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나는 암호화폐가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와 인터넷에 이은 세 번째 위대한 발명품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호명 되기를 기대한다. 성공한다면, 암호화폐가 가속할 수 있는 권력의 분산은 다양성을 가진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텃밭이 될 것이다. 자유의 확산은 그 텃밭에서 더 많은 사람이 기꺼이 활동하게 할 것이다. 정보 기술이 꿈꾸던 그런 이상은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암호화폐로 완성될 수 있다. 그 방향성 자체에 정치 공학적인 이견은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암호화폐가 던지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담론이 기술적 사회적 의미 모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공 지능은 주로 미래 인류의 멸망 또는 신인류의 탄생 같은 공상과학적 담론을 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암호화폐는 현재의 돈, 가치, 경제, 권력,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하고, 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때로는 아나키즘 같기도 하고 때로는 시장 자유주의 같기도 하다. 사회학자 김성국은 잡종화를 통한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아나키즘과 시장 자유주의의 잡종)가 새로운 문명 전환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나는 묘하게도 암호화폐 현상에서 그 공명을 느낀다.

어쨌든 아직은 후보지만, 4차산업혁명 유망 아이템 맞다.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를 억제하는 것 같지만, 잘나가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중국발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하튼 여러 난제가 있고, 이렇게 저렇게 해도 나카모토가 제시한 묘수 이상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헛수고란 없다. 실패한 후 우리 자신을 보면 퀀텀 점프해 있는 내재한 역량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단 ‘장난감’을 ‘망치’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음번엔 진짜 망치를 만들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그걸로 집도 짓고, 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가 등장할 것이다. 끝.

 

 

이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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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to “또 다른 ‘나카모토’ 돌파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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