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존 애플씨드의 부재

[요약] 애플의 2015년 첫 이벤트가 있었다. 애플 TV, 뉴 맥북, 애플 와치, 리서치키트 등의 발표가 있었다. 새로운 제품군들이 각자의 포지셔닝을 잘 찾아갈지 불분명한 가운데, 애플은 점점 모범 답안적이고 장황한 설명에 귀착되는 것 같다. 애플 제품의 데모 화면에 자주 등장하던 가상의 존 애플씨드라는 인물도 이젠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다소 감상적인 것이긴 해도, 애플은 어쨌든 스티브 잡스 이후 알게 모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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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카플레이를 소개하는 에디 큐. 존 애플씨드의 모습이 보인다.

카플레이를 소개하는 에디 큐. 데모 화면에 존 애플씨드의 모습이 보인다. (WWDC 2013)

지디넷 코리아에 기고한 컬럼. 아래 링크 참조.

포스트 잡스 시대, 달라진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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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애플씨드(John Appleseed)씨를 기억하는가?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하면서 첫 광고와 이벤트 데모 화면에 사용되던 그 이름 말이다. (아이폰 이전에도 깨알 같은 디테일의 예전 버전 TextEdit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에 쓰인 편지 내용에 발신인으로 등장한다고는 한다) 분위기 자체가 애플식 홍길동쯤으로 느껴지는 이 이름의 기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가장 많이 연상하는 인물은 조니 애플씨드라는 별명을 가졌던 초기 미국 개척 시대의 실존 인물인 존 채프먼(John Chapman)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서부 개척지에 사과를 소개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던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 개척 정신과 애플씨드라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 때문에 애플이 이 이름을 사용한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또 다른 설은 초기 애플 투자자이자 CEO도 역임했던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이다. 그는 프로그래머로서 애플II 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그 개발자로서의 필명이 존 애플씨드였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존 애플씨드가 쿠퍼티노에 사는 평범한 실존 인물로, 스티브 잡스가 마치 외부 고문처럼 마음을 터놓고 애플의 새로운 신제품과 서비스에 관한 얘기를 나눴던 외부 인사였는데,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다는 얘기도 있고, 또는 호주의 작은 고등학교 졸업생 데이터베이스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 학교 졸업생들의 이름이 애플의 다른 데모 화면에도 사용되었다더라는 설도 있다. 후자의 이야기들은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듯하나, 앞의 이야기들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좌우간, 존 애플씨드는 그 후에도 애플의 이벤트 데모에서 자주 등장했다. 그러다가 팀 쿡이  CEO가 되고,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뜨면서, 존 애플씨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 명맥은 계속 유지되어, 2013년 카플레이(CarPlay)를 소개할 때, 그리고 2014년 애플 페이(Apple Pay)의 데모 화면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애플의 2015년 첫 이벤트를 다 보고 난 후, 불현듯 그의 부재를 깨달았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존 애플씨드의 부재가 왜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일까? 부재와 추억이 의미하는 것은, 어쨌든 시대는 항상 변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새삼스럽게도, 가슴 뛰던 아이폰의 시대도 그렇게 갔다는 것을 존 애플씨드의 부재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 이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지, 제품 폼팩터별 포지셔닝을 중심으로 이번 이벤트의 내용으로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애플 TV는 빅 스크린의 어댑터 역할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애플도, 팬보이들도 이미 눈치챘듯이. 사실 애플 TV는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인 2006년에 ‘iTV’라는 코드명으로 발표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동안 일체형 TV가 나온다느니, 게임 플랫폼을 갖춘다느니 루머가 많았지만, 애플 TV의 정책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아이팟-아이튠스의 비디오 서비스 확장의 일환이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그간 겨우 세 번의 세대교체만 있었을 뿐이다)

이번 ‘HBO 나우’의 독점 공급을 화두에 넣은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HBO가 넷플릭스 등과의 경쟁을 위해선 언젠가 케이블 가입 기반을 벗어나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고, 이번 애플과의 협력이 그 신호탄이 된 것이다. 이 대목을 가장 우려해야 할 당사자는 넷플릭스이다. 오리지널 자체 콘텐트를 제작하며 이미 TV 네트워크화된 넷플릭스가 그 핵심 사업에서 진짜 강자인 HBO와 직접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어차피 오늘내일하던 얘기니까 큰 감흥은 없지만)

애플 TV 하드웨어 자체의 세대교체는 없이 가격만 99달러에서 69달러로 낮춘 것은, 로쿠(Roku) 같은 제품과의 경쟁 관계가 큰 이유겠지만, 애플 TV가 하드웨어 판매가 아닌 콘텐트 판매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해준다. 앞으로 그나마 있을법한 하드웨어적인 업그레이드는 아마도 로쿠 스트리밍 스틱 같은 초소형 폼팩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둘째, 새로운 맥북은 맥북 에어의 아성마저 넘어버렸다. 이로써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에 큰 혼란이 생겼다. 항간에 떠도는 빅 아이패드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 아이패드는 당시의 열등했던 성능의 넷북 포지셔닝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즉, 아이패드는 생산성 단말기로서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없애고, 미디어 소비성 단말기로서 특화되었다. 월트 모스버그가 일찍이 애플의 아이팟 성공을 두고 마이크로소프트 시대를 넘어선 ‘포스트 PC‘ 시대의 등장을 예고했듯이, 애플은 아이팟, 애플 TV, 아이폰, 아이패드으로 그렇게 이 ‘포스트’ 시대를 이끌어 왔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단순한 소비성 기계가 아닌 생산성, 창의성 도구로서도 성장하고, 노트북은 반대로 초소형화로 아이패드의 포지셔닝에 근접 중이다. (아마도 엄격하게 따지자면 가장 분명한 구분점은 가격뿐일 것이다)

뉴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 2의 크기 비교

뉴 맥북과 아이패드 에어 2 비교

모르긴 해도, 아이패드의 운명은 애플 TV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콘텐트의 거대한 파이프가 아이패드 꼭지에 경제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왜 굳이 초소형 노트북이 아닌 아이패드가 필요하겠나? 다만 애플 TV는 파이프 싸움이 주요하다면, 아이패드는 소비 행태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그런 아이패드가 현재의 얼리어답터 성벽을 허물고 과연 아줌마, 아저씨의 장난감이 될 수 있을까?

반면, 새로운 맥북은 노트북의 영역을 더 굳건히 할 것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하나는 초박형의 이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엔드 방향이다. 새로운 맥북은 더 얇고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는 방향축에 있다. 이다음엔 또 다른 축에서 멋진 뭔가가 나오고, 그렇게 로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뜻밖에 이 오래된 폼팩터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셋째, 애플 와치는 새로운 대중적 폼팩터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 대중적 수용은 반드시 절실한 필요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들고나온 아이폰은 아이팟, 전화, 인터넷의 삼위일체를 강조한 단말기였다. 모두가 이미 대중적인 소비 기반을 두고 있었던 서비스였고, 제대로 된 개인화된 모바일 단말기의 등장에 목말라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팀 쿡이 설명하는 애플 와치도 비슷한 삼위일체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번엔 시간, 통신, 건강 및 운동이다. 물론 셋 다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는 맞다. 하지만 그래서 왜 시계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손목시계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모셔진 지 오래다. 손목시계의 귀찮음을 휴대폰이 멋지게 해결했다. 그런데 왜 다시 시계인가? 통신, 운동 센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아이폰에는 훌륭한 앱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굳이 시계인가?

웨어러블 컴퓨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웨어러블인가? 결국, 양손과 주머니의 자유를 위해서 아닌가? 거의 실패를 인정한 구글 글라스도 양손의 자유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속박을 강요한다. 라섹, 라식의 시대에 웬 난데없는 안경인가? 똑같은 속박이 애플 와치에도 있다. 여전히 아이폰은 들고 다녀야 하며, 손목에 시계도 차야 한다. (이번 이벤트에서 소개된 동영상에서 아이폰 암밴드와 애플 와치를 모두 차고 달리는 크리스티 번즈의 모습을 보라! 도대체 왜?)

이 필요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기에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갖다 부어도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애플 와치 시연에 나왔던, 주가, 스포츠, 트위터, 항공 스케쥴 알림 등의 위젯 화면이나 ‘헤이 시리’라면서 음성 검색하는 서비스를 보면, 구글 글라스에서 시연되었던 ‘구글 나우’나 ‘오케이 구글’ 음성 명령과 완벽히 오버랩된다. (분명, 멋지긴 하다!) 애플 페이를 손쉽게 하는 것이나, 항공권을 패스포트로 바로 확인하거나, 프런트를 거치지 않고도 열쇠카드 없이 호텔 방문을 열거나, 원격에서 차고 문을 여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시계가 있다면’이지, ‘그래서 시계가 필요하다’는 아니다. 이미 자체로 완벽한 준비된 플랫폼인 내 아이폰으로도 그런 일들은 하지 않는다. 그런 서비스들이 그렇게 필요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반짝반짝 빛나는 애플 와치는 멋진 액세서리가 될 것은 분명하다. 결론은, 멋진 것과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필수적인 폼팩터가 되지 않는 한, 구글 글라스가 대량 양산을 포기한 결정이 선견지명이었다는 것을 탄식하게 될 정도로 애플 와치의 미래는 더 암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지만, 리서치키트(ResearchKit)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홈키트(Homekit)와 마찬가지로, 애플이 최근 강화하고 있는 오픈 플랫폼 전략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향후 빅데이터의 방향성에서 큰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벤트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서치키트의 목적은 의학 연구를 위해 일반인(환자)들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리서치키트를 사용한 연구 기관의 앱을 사용자들이 설치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만들어주면, 해당 연구 기관에서 관련된 연구를 진행한다는 공익적 성격의 오픈 소스, 오픈 플랫폼이다.

중요한 점은 애플은 둘 사이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 말고는 데이터 자체에 관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자발적이라는 점, 정확히 필요한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 제 3자(애플 포함)가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빅데이터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한다. 즉, 여타의 빅데이터 서비스는 데이터 수집을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정 목적에 꼭 맞는 데이터를 생성하지도 않으며(일차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항상 있다.

사실 현재의 이런 문제점들은 빅데이터가 또 다른 기술 거품이 될 것 수도 있는 심각한 것이다. 사용자가 자발적이지 않고 거부감을 느끼는 서비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없고, 선순환 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곧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돌파구는 명확하다. 자발적인 참여가 기본 전제가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리서치키트처럼 공익적인 목적으로 진정한 빅데이터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래야 자발적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까지 이번 애플 이벤트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나열해 보았다. 잡스 이후에 애플의 행보에 대해선 언제나 꼬리표처럼 붙는 말들이 있다. 더 이상 혁신적이지 않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혁신과 새로움이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애플의 최근 행보가 굉장히 모범 답안적인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고, 또한 그 설명이 꽤 장황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플이 문을 연 포스트 PC 시대의 특성이 기본적으로 전선이 너무 넓은 탓도 있겠다. (애플의 주요 경쟁사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세 회사만 언급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애플의 모습이 파괴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상당히 절차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아하!’가 없고, ‘잘 빠졌네’만 있다. 사실은 그게 더 두려운 것이다.

이런 다소 막연한 아쉬움과 더불어, 서두에 얘기했듯이, 애플씨드씨의 부재가 사람을 갑자기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애플은 분명 포스트-잡스의 변화를 겪고 있다. 잡스 취향의 스큐어모피즘 디자인 퇴출이나, 존 애플씨드의 은퇴가 그런 ‘변화’를 대변할 수는 없다. 그저 좀 아쉬운 정도의 ‘변색’이랄까.

스티브 잡스가 2007년 아이폰을 소개하는 이벤트의 말미에, 회사의 명칭에서 ‘컴퓨터’를 빼버리면서,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인용했었다.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있을 곳으로 스케이트를 탄다.
I skate to where the puck is going to be, not where it has been.

그런 게 변화다. 스티브 잡스가 그리워도, 미스터 존 애플씨드가 아쉬워도, 그런 ‘변색’은 감상적일 뿐이고, 애플의 ‘변화’는 분명 퍽이 있을 곳을 향해 있길 바란다.

 

이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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