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휴리스틱 요금제

[요약] 넷플릭스가 7.99달러 요금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동시 접속 스크린 수나 품질 차이 등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오판을 해버리는 소비자의 휴리스틱 심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생각하는 요금 전략의 방향도 그런 전제가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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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7.99달러라는 단일 요금제를 고수하던 넷플릭스가 작년부터 여러 요금제를 실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동시에 4개 스크린 접근이 가능한-기본형은 동시 2개 스크린 접근- 가족형 11.99달러 요금제를 내놓더니, 12월에는 1개 스크린에 제한된 SD 해상도 전용 6.99달러 요금제를 발표했다. 미국이었으면 제2의 퀵스터(Qwikster) 사태를 맞았을 대담한 가격 인상까지도 실험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가격을 1유로 올린 7.99유로(10.94달러)로 변경한 것이다.

이 실험들을,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좋은, 더 좋은, 최적의 가격’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입에 발린 소리다. 단순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던 넷플릭스가 이런 실험을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당연히 이런 논리일 것이다. 현재의 가격을 언제고 유지할 수는 없다. 인플레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성장을 지속하려면 매출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저가격 고정 요금제로는 이게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방법은 가입자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긴 하나 곧 한계에 부딪힌다. 해외로 확장하여 가입자 풀을 늘려야 하지만, 그 비용도 만만찮다. 게다가 컨텐트 소싱 비용은 점점 버거워가는데, 가입자들은 점점 볼 게 없다는 볼멘소리만 한다. (그런 팰릭스 새먼의 불평에 대해선 지난 글을 보라.)

자, 기업이 고객에게 최적의 가격을 찾아 실험한다는 것은 최저 가격으로 보답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高)의 가격을 찾겠다는 소리다. 즉, 현재의 (평균) 가격을 올리고 싶다는 얘기다. 1달러 저렴한 요금제를 내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요금제는 모든 가입자에게 열려있지 않다. 일부 신규 가입자들에게 테스트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실험의 목적은 명백하다. 가격에 의한 신규 가입 유도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얘기를, 넷플릭스의 CFO인 데이비드 웰스가 하고 있다.

요금 정책 이론에 보면 소비자들이 휴리스틱에 의한 선택 판단도 있다. 그래서 1달러가 논리적 기준으론 크게 의미가 없을지라도 소비자들은 중간 것이든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선택하게 하는 지름길을 가질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휴리스틱’은 무엇이고, ‘지름길’이 무엇인가. 해석이 매끄럽지 않지만, 이 용어엔 추가 설명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양해를 바란다.

‘휴리스틱(heuristic)’이란, 이성이나 추론이 아니라, 경험이나 직관을 바탕으로 어림잡아 판단을 해버리는 심리 과정을 의미한다. 심리학에선 이런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생각의 과정을 시스템 1, 이성적이고 추론적인 생각의 과정을 시스템 2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스템 1은 수렵 채집 시절의 기억을 유전자에 그대로 담고 있는, 말하자면 생존의 메커니즘이다. 즉, 적으로부터의 위험 회피나, 먹잇감의 빠른 포획을 위해선 직관적인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 1엔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시스템 2가 시스템 1의 입력을 추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시스템 2는 게으르다는 데 있다. 시스템 2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당연히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수준의 문제라면, 굳이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더라도 시스템 2를 작동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바로 웰스가 말한 ‘지름길’이다. 힘들이지 않고 그냥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시스템 1로 판단을 해버리는 것이다. 1 달러의 값어치를 굳이 따져보려고 수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틀랜틱은 웰스가 말한 요금 정책 이론으로 ‘골딜록스(Goldilocks) 효과’를 들고 있다. 골딜록스는 유명한 전래 동화 ‘곰 세 마리’에 나오는 소녀의 이름이다. 곰의 빈집에 들어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수프를 먹고, 너무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적당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그 소녀 말이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제일 싼 가격과 제일 비싼 양 극단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애틀랜틱에 소개된 실험 결과를 보면 그런 요금 정책의 효과를 알 수 있다. 싼 맥주와 비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은 33% 대 66%이다. 여기에 더 싼 맥주를 추가하면, 가운데 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이 33%에서 47%로 올라간다. 그런데 이번엔 가장 싼 맥주를 없애고 아주 비싼 맥주를 추가하면, 가운데 가격이 된 비싼 맥주를 선택하는 비율이 66%에서 90%로 치솟는다.

넷플릭스 요금제 선택 화면 (출처: 애드위크)
넷플릭스 요금제 선택 화면 (출처: 애드위크)

공교롭게도, 넷플릭스의 지금 실험은 6.99달러, 7.99달러, 11.99달러의 3단계 가격 체계로, 위 실험 모델과 같다. 물론 11.99달러 가족형의 비율이 미미한 상태에서 6.99달러짜리가 추가된 형국이니, 딱 위 실험의 재현은 아니다. 사실 6.99달러 요금제는 제한적이고 엔트리 성격이 강하므로 예외적이다.

하지만 가치를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위 요금제는 기본적으로 동시 접속 스크린 수로 구분된다. 이것은 가족의 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므로 판단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다고 치자. 하지만 6.99달러에선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SD 전용이라는 품질 항목이 추가된다. 넷플릭스가 UHD를 지원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예를 들어, 8.99달러짜리 UHD 요금제를 가정해 볼 수도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최신 컨텐트를 마냥 늘릴 수 없는 넷플릭스의 입장에선 새로운 프리미엄 요금제를 만들만한 모멘텀이 별로 없다. 그러니, 동시 접속 스크린 수가 아니면, 품질의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8.99달러짜리 UHD 요금제를 받아들일까?

알 수 없다. 3가지 중 가장 무난한 중간을 선택하는 요금 정책 이론의 휴리스틱은 만들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해상도는 최첨단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UHD를 평가하게 될 또 다른 휴리스틱은 여전히 살아있지 않을까?

결국, 넷플릭스는 어떤 식의 휴리스틱이든, (살아남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게 될 것이다.

 

[게몽]

12 Comments

  1. RT @gemong1: 요즘 넷플릭스 얘기를 연속해서 쓰게 되네요. 요금제에 대해 애틀랜틱(이번에도)에서 재미난 기사를 썼길래 포스팅해봤습니다.

    http://t.co/2eMlal1ciA

    뭐 지금 시간에 읽으실 분도 없겠지만.

  2. RT @gemong1: 요즘 넷플릭스 얘기를 연속해서 쓰게 되네요. 요금제에 대해 애틀랜틱(이번에도)에서 재미난 기사를 썼길래 포스팅해봤습니다.

    http://t.co/2eMlal1ciA

    뭐 지금 시간에 읽으실 분도 없겠지만.

  3. […] 사태 이후에도 어떻게든 요금제를 손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때로는 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조정하는 방식을 시험하기도 한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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