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북은 마케터를 위한 앱, 소비자가 아니고.

애플의 iOS 6의 특징 중 하나는 패스북(Passbook)입니다. 맨 처음 이것이 발표되었을 때, 다들 의외라 생각했죠. 기다리던 NFC는 기약 없이, 뜬금없는 패스 관리 앱이라니. 애플의 패스북에 대한 세일즈 톡을 보면, 귀찮은 소비자를 위해 애플이 또 좋은 무료 앱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이메일을 하나하나 열어보거나 프린트물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Passbook이 모든 상품권, 쿠폰, 입장권, 티켓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에 언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자로서의 유산입니다만, 어떤 서비스든 그 수익 모델을 예상해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런 삐딱함으로 애플의 패스북을 가만히 보면 이 앱의 진짜 목적성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패스북은 소비자보다는 마케터들이 열광할 앱입니다. 애플이 마케터들에게 소비자들이 ‘소비’와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패스북같은 전자 지갑은 애플의 창조물은 아닙니다. 한국만 봐도 이미 2010년에 SK텔레콤에서 ‘T스마트월렛’이란 앱을 내놓았었죠. 현재 한국에만 약 6종 정도가 파악됩니다. 하지만 모두 동상이몽으로 각자의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 출시된 전자 지갑. 왼쪽 위부터 차례로, SK플래닛 ‘스마트월렛’, KT ‘올레마이월렛’, LG U+ ‘U+ 스마트월렛’, 하나은행 ‘하나N월렛’, 신한은행 ‘주 머니’, 삼성카드 ‘m포켓’

가장 오래된 SK텔레콤(SK플래닛)의 ‘스마트월렛‘이 500만 가입자를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외국 사례는 구글 월렛(Google Wallet)이 대표적인데, 역시 마찬가지로 큰 트래픽을 모으고 있지는 않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 왜 애플의 패스북이 나왔을까요?

전자 지갑에 가지고 있는 흔한 오해들을 풀어보며 그 문제를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오해의 답: 전자 지갑 ≠ 모바일 결제

전자 지갑이 반드시 결제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바일 결제는 실제 돈이 이동하는 직접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전자 지갑에 중요한 기능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전자 지갑과 모바일 결제가 꼭 같은 창구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꼭 지갑 앱을 열어야 결제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결제는 언제 어디서나-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루어져야 하는 기반 서비스입니다. 전자 지갑이라는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녹이어야 할 내용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튀어나올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전자 지갑이라는 용어엔 모바일 결제라는 개념이 너무 견고히 박혀 있습니다. 모바일 결제를 지갑을 연다는 메타포에 억지로 연결하려는 것이야말로 스큐어모피즘의 오류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바일 결제와 전자 지갑은 개념을 좀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지갑을 연다는 행위 자체는 너무나 결과론적입니다. 그보다는 지갑을 열기까지의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그려내는 것이 진짜 전자 지갑 수익 모델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패스북은 결제보다는 그런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플랫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은 인증을 해주는 역할 이외에는 사실 큰 기능적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쉽게 제공할 것인가의 문제는 있죠. NFC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도 그런 차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인프라가 구축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죠. 물리적 카드에 가상 카드를 입히는 지오드(Geode)같은 특별한 액세서리형 솔루션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죠.

지오드(Geode)는 신용카드, 멤버쉽 카드 등을 지문 인식을 통해 인증하여 특별한 물리적 카드인 지오카드(GeoCard)에 대입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아이폰 서비스 및 액세서리

필 쉴러(Phil Schiller)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애플은 일단 모바일 결제와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애플의 시니어 부사장인 필 쉴러는 패스북 하나만으로 대부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수행할 수 있고, 상업 결제 시스템의 존재 없이도 된다고 말했다. NFC가 현재의 어떠한 문제에 해결책이라는 것이 명확지 않다고 쉴러는 말했다. “패스북은 오늘날의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종류의 것들을 수행한다.”
Apple Senior VP Phil Schiller said that Passbook alone does what most customers want and works without existing merchant payment systems. It’s not clear that NFC is the solution to any current problem, Schiller said. “Passbook does the kinds of things customers need today.”

모바일 결제는 어쨌든 패스북 개념의 전자 지갑 서비스 측면에서 보자면, 결제 인증 시스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NFC가 무르익으면, NFC를 통한 결제 인증 시스템을 붙이면 되고(실제로, 애플은 NFC 관련 특허를 2008년도에 집중적으로 출원한 사례도 있고, NFC 전문가를 영입하기도 했죠.), 애플 ID에 연결된 카드 결제 시스템을 붙여도 됩니다. (왜 안 되겠어요?) 결제의 핵심이 인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NFC가 아니라 지문 인식 같은 기술이 모바일에선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모바일 결제만 바라보고 있는 전자 지갑 서비스는 그저 망부석이 될 뿐입니다. 현재 모바일 결제는 지지부진할 따름이고, 그저 때를 기다려야죠.

중요한 점은 결제가 아니라 결제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없다면 모바일 결제가 아무리 잘 갖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전자 지갑은 모바일 결제와는 분리된 다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오해의 답: 타겟은 소비자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

두 번째로 현재 전자 지갑들의 주된 오류가 무엇인가 하면, 그 타겟을 너무 소비자에게만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니즈에 의해서만 기획하다 보면 곧 큰 장벽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비즈니스 파트너들의 참여입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다양한 사업자들의 참여를 원할 것이고, 이 니즈에 맞으려면 정말 다양한 사업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건 단순히 협상 기술만 가지고 있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호소력도 없는 오픈 플랫폼만을 강조하는 것도 의미 없습니다. 상품 자체가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위한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광고 서비스와 비슷하죠. 광고 서비스의 고객이 소비자가 아니라 마케터들인 것처럼.

수익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패스북 세일즈 톡의 행간에 감춰진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티켓, 멤버쉽, 쿠폰 등이 디지털화되길 진짜 갈망하는 사람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마케터들 입니다. 작은 단서를 굳이 찾자면, 애플의 광고플랫폼인 아이애드(iAd)의 저작 도구인 아이애드 프로듀서(iAd Producer)가 얼마 전 별로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업데이트한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광고에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는 정말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같은 것입니다. PC에서야 크리에이티브의 표현력도 풍부하고, 여러 가지 인게이지먼트를 유발해 낼 수 있는 양방향의 여지가 어느 정도 있지만, 모바일에선 아시다시피 너무나 제약이 많습니다. 단순히 모바일 웹 페이지를 보여주는 것 말고는 인게이지먼트의 수단 자체가 큰 벽입니다. 흔히 연동되는 인게이지먼트는 전화, 지도, 주소록, 앱스토어 등의 앱을 연결 구동하는 것인데, 그렇게 표현력도 뛰어나지 않은 광고를 보고 소비자가 전화 걸기 같은 행위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모바일 광고를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존의 온라인 광고들이 모바일보다는 표현력과 양방향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상품을 노출하고 클릭을 통해 랜딩 페이지에 유도하는 것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클릭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심 있는 소비자를 골라 노출하는 타게팅 정도가 거의 유일한 기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못난 모바일 광고에는 아주 뛰어난 잠재력이 있는데 그건 모바일은 소비자의 주변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 단말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와 접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하지만 이것도 인게이지먼트가 일어나야 뭔가 일이 벌어지는 일이지, 그냥 무작정 노출만 시킨다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애드 프로듀서의 업데이트에 트위터 팔로우, 미리 알림 연동, 그리고 패스북 연동 등의 기능이 추가된 것은 마케터들에겐 중요한 뉴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제3의 광고 플랫폼이나 개별 앱에서 이런 기능을 구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공통의 원스톱 통합플랫폼을 갖는다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트위터를 연동하려 하더라도, 매번 트위터 아이디/패스워드로 인증을 해야 하는 수고는 큰 장벽입니다. 애플의 트위터 통합 서비스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미 인증이 되어있는 아이디가 있으므로, 인증의 장벽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패스북은 또 다른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패스북이 광고를 구매와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타게팅된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노출하는 데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 광고로부터의 관심을 저장할 수 있는 버퍼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통계적 무작위 타게팅의 한계를 뛰어넘는 소비자의 선택에 의한 역타게팅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 아이애드와 패스북은 인게이지먼트와 타게팅의 톱니바퀴

결국 아이애드와 패스북은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마케팅 툴이 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귀찮음 해결사로 포장된 패스북의 비밀 임무를 아이애드와의 관계도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애드와 패스북의 관계

물론 아이애드에 한정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3의 광고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그냥 그런 광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예를 들면 단독 앱-을 포괄하는 얘기입니다. 어쨌든 애플이 굳이 아이애드라는 광고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으니, 아이애드에 한정하여 표현해봅니다.

아이애드의 광고로부터 소비자들이 관심이 있을만한 쿠폰 또는 이벤트 등의 대상물이 패스북으로 전달되는 ‘인게이지먼트’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쿠폰이나 티켓의 사용 등 구매와 관련된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소비 성향을 노출하며 브랜드 리텐션을 강화하는 기본 데이터베이스가 되겠죠. 그리고 이것은 그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노출할 수 있도록 아이애드가 ‘타게팅’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즉, 아이애드의 ‘인게이지먼트’가 패스북의 톱니를 돌리고, 패스북의 ‘타게팅’ 정보가 아이애드의 톱니를 돌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위 그림에도 표현을 했지만, 여기서 실질적인 구매, 즉 결제 행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제 행위가 없어도 소비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아까 말했듯 전자 지갑과 모바일 결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애플은 이 거대한 두 톱니바퀴를 위해 다양한 윤활유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애드와 트위터/페이스북 통합은 결국 광고의 확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가 될 것이고, 지도, 알림 센터, 미리 알림 등의 기능은 패스북이 구매와 잘 연결되기 위해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애플의 패스북 설명 문구에 표현된 사용 예시를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Passbook은 시간과 장소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입장권과 티켓이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 따라 잠금 화면에 자동으로 표시됩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탑승권이 곧바로 나타나고, 탑승을 기다리던 중 게이트가 바뀌면 Passbook이 알려줍니다. 그리고 변경된 게이트로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서면 이번에는 상품권이 바로 나타납니다.

이건 얼마 전 주목을 받았던 숍킥(Shopkick)의 사업 모델을 그냥 무너뜨릴 수 있는 기능입니다. 숍킥은 특수한 음파 송신기를 매장에 설치하고 소비자가 샵킥의 앱을 실행해야 비슷한 서비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숍킥은 마케터들의 찬사를 받았죠. 이걸 애플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거추장스러운 음파 송신기나 앱 실행 없이 말입니다. 애플이 이미 2008년에 출원했던 다음의 특허들을 보면 이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나옵니다.

매장에 접근하면 광고가 뜨는 애플의 특허
애플의 핫스팟을 활용한 지역 타게팅 광고

2008년 7월 9일자로 출원된 애플의 특허, ‘ADDING A CONTACT TO A HOME SCREEN‘의 예시 그림. 매장으로부터 정해진 거리 이내로 들어오면 매장에서 제공하는 특별한 오퍼를 받을 수 있음.

패스북의 목적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최근의 애플의 움직임은 소비자보다는 마케터를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마치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와 기능인 것으로 잘 포장은 되어있습니다. 광고플랫폼인 아이애드조차도 그 설명이 “TV의 감성과 인터넷의 양방향성을 모두 갖춘 광고”였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깊이 감춰진 내면은 더 큰 수익 모델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알림 센터, 트위터/페이스북 통합 연동, 미리 알림, 그리고 설익은 품질로 문제가 되면서까지 독자 서비스를 고집한 지도, 그리고 패스북까지, 일련의 플랫폼들이 모두 이런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마케터를 위한 거대한 유기적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애플의 패스북은 단순한 모바일 결제 솔루션 시장이 아니라, 아이애드와 더불어 “거대한 마케팅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 도구입니다. 전자 지갑은 소비자가 아니라 마케터가 열광하는 제품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패스북에 대한 대응은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아직 힘을 받고 있지 않은 아이애드와 더불어, 패스북이 얼마나 성공하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아직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시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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